변신이라는 탐닉과 유영의 중간에서 - Park Jung Hyuk

Criticisms

변신이라는 탐닉과 유영의 중간에서

2025.05.20

이문정 | 미술평론가, 연구소 리포에틱 대표

하나의 포토그램에 해당하는 하나의 구절은 끊임없는 운동 속에서 시각적인 자극을 풍부하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중략) 매 페이지마다 동사는 모두 현재형으로 쓰인다. 모든 일들이 우리 눈앞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말이다. 새로운 사건들이 재빨리 밀려오고, 사건과 사건 사이의 거리가 모두 사라진다.1
 
하나로 융합하는지, 여러 갈래로 쪼개지는지 불분명한 형상들이 시야를 채운다. 녹아내리는 듯하다가도 흘러넘치는 듯한, 판단하기 어려운 이미지의 조각들이 뒤엉켜 있는 세계가 눈앞에서 펼쳐진다. 물리적으로 정지한 회화임에도 꿈틀거리는 움직임을 전한다.
 
약동이라기 보다는 몸부림에 가까워 보이는 것은 무슨 연유인지 모르겠다. 작품 속 모든 상황은 진행형이다. 색으로만 채워진 부분에서조차 긴장으로 숨을 멎게 되는 작품들은 인상과 느낌 그리고 감정, 생각까지 과잉 상태에 빠진 누군가의 내면 혹은 머릿속을 구현한 것처럼 보인다.
 
분열되고 파편화된 주체의 꿈이나 무의식을 그린 것이라 해도 어렵지 않게 수긍할 만큼 여러 심연 속 미궁 같다. 해소되지 못한 욕망, 뒤섞인 기억의 시각화 같기도 하다.
 
어디선가 본 듯한 이미지들이 적지 않음에도 박정혁의 ‘Park’s Land’ 시리즈(2021~)는 낯설고 기묘한 분위기를 풍긴다. 이는 ‘Park’s Park’ 시리즈(2005~2014)에서부터 이어지는 특징이 심화된 것으로 작가 자신이 수집한 이미지들을 인용하지만, 반드시 외적이고 내적인 변용의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특히 ‘Park’s Land에서는 그리스 신화, 성서를 담은 미술 작품들의 부분이 다수 담겼다.

은색 PET필름 위에 유화로 형상을 그린 ‘Park’s Memory’ 시리즈(2017~2021)에서도 페테르 파울 루벤스(Peter Paul Rubens)의 <레우키포스 딸들의 납치(The Rape of the Daughters of Leucippus)>(1618경)처럼 신화를 근거로 한 고전 작품들이 인용되었으나 ‘Park’s Land’에서 그 비중이 더 커졌고, 오비디우스(Publius Ovidius Naso)의 『변신 이야기(Metamorphoses)』(AD 8)에서 착안해 시작된 작업의 모티프(motif)는 다양한 갈래로 뻗어나갔다.


《불온한 가능성》전시 전경 ©리포에틱

『변신 이야기』는 우주와 인간의 탄생에서부터 아우구스투스(Divus Augustus) 시대까지를 배경으로 변신에 초점을 맞춘 신화 모음집으로 변신이라는 주제를 제외하면 주인공도, 통일된 하나의 줄거리도 없어 그때까지의 서사시의 전통을 벗어나고 있다. 또한 세계가 생성되는 역사를 담지만 특정한 정당성이나 목표를 밝히고 있지 않아 “회의주의와 허무주의의 색채”를 띠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2
 
이러한 특성은 고정관념과 획일화된 사고체계에 비판적 질문을 던지면서도 전통을 숙고하는 박정혁에게 매력적인 부분이었을 것이다. 이후 작가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변신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육화와 부활,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신념과 믿음, 이데올로기의 영향 등에 의한 정신적이고 육체적인 변화까지 소재로 다루게 되었다.
 
그런 만큼 ‘Park’s Land’에서 가장 먼저 붙잡게 되는 키워드는 당연히 변신과 신화이다. 일반적으로 변신은 원래의 모습이 자의나 타의로 다르게 바뀜을 뜻하는데, 주로 외관-육체의 변신을 떠올리게 된다. 오늘날도 문화예술 창작물에서 인간이 동물이나 식물, 사물 같은 비인간으로 변하거나 동물이 인간으로 변하는 상황, 혹은 초월적 힘을 가진 존재가 인간으로 둔갑하는 이야기 등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변신은 특별한 서사에만 담기는 희귀한 사건이 아니다.
 
사실 인간 주체는 이 세상에 태어나 평생 변신의 과정을 거친다. 갓난아이에서부터 노인에 이르는 모든 사람의 육체적 변화는 어떤 사건이나 소설보다 극적이다. 장기를 교체하거나 외모를 바꾸기도 한다. 또한 작가가 직접 밝히고 있는 부 캐릭터(副 Character), 가상 현실 속 아바타(Avatar)도 또 다른 예시가 될 수 있다.3
 
외양만 변신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개인과 공동체)의 세계관, 마음과 감정, 생각과 신념 등은 끝없이 바뀐다. 또한 현실 속 다수의 인간은 현재의 자신과는 다른 존재로의 변신을 꿈꾼다. 실질적으로는 불가능한 존재로의 변신뿐 아니라 사회 경제적인 지위 등이 바뀌길 욕망하고, 특정한 사람처럼 되었으면 좋겠다는 열망을 갖기도 한다.
 
여기에는 현실적으로 자기를 압박하는 한계를 뛰어넘고자 하는 바람이 작용하며, 사회적 요구가 반영되기도 한다. 변신한 모습을 상상하며 심리적 불만족과 갈등이 해소되고, 해방감을 느껴 일상생활에 활력을 줄 수도 있다. 변신의 욕구가 삶의 에너지가 될 수도 있기에 그저 현실 회피를 위한 몽상이나 허무맹랑한 망상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자신이 왜 그러한 존재로 변신하고 싶은지 스스로 질문을 던지며 성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분명 현실의 삶에 기반한다. 나아가 변신은 주체가 자신이 아닌 존재와 자기 사이의 영역을 넘어서는 현상이기에 그것이 설령 비현실적이라 해도 고착된 경계를 해체하고 단일한 규범과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저항적 상징으로 기능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예술 작품은 변신과 긴밀하다. 작가의 머릿속에 있는 무언가가 세상 밖으로 나와 감상과 분석의 대상이 된다. 다양한 방식의 과정을 거쳐 작품이 되는 순간 물감과 캔버스, 흙과 돌, 금속, 심지어 일상의 사물까지 작품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따라서 박정혁의 작품에 등장하는 변신의 이미지들은 특정한 이야기를 전하는, 도상학적 해석을 위한 힌트로 한정되어서는 안 된다. 낯섦과 익숙함이 서로 충돌하면서 공존하는 화폭은 인간과 인간을 둘러싼 세상의 안과 밖에서 끝없이 시도되는 여러 방식의 변신-변화에 관한 탐구와 비판적 의미 생성을 위한 장이다.


〈Park's Land 34〉, 2023, 캔버스에 유화, 130.3 x 193.9 cm ©Artist

한편 신화는 세계를 아우르는 놀랍고 신비한 현상에 근거해 인간-영웅과 신의 활동, 자연의 작용을 담아내는 기원-근원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그러다 보니 단일한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신화는 한 명에 의해 창작된 것이 아니라 공동체적이고 문화적인 기억을 토대로 형성된 것이다. 신이 등장하는 종교 이야기이자 역사이고, 환상과도 같은 서사이다. 전승되고 수용되면서 그 이야기와 의미가 끝없이 생성되고 변화된 결과물이다. 즉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고 반응해 온 사고방식의 표현”이자 “그에 대한 이해의 토대와 문화를 담고 있는 것”이므로 시대에 따라 재해석, 재창조될 수밖에 없다.4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종교에서도 관점과 태도, 해석 방식의 차이에 대한 논의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신화나 교리가 예술로 표현되었을 때는 다양성의 범위가 더 넓어진다. 선사시대의 동굴벽화에서부터 재현 미술, 추상미술, 현대미술에 이르기까지 미술 작품은 기호와 상징으로 작동한다. 그래서 보는 사람과 보는 행위, 복잡한 사회적 의미 구조에 얽혀 있는 기호와 상징 체계가 중요하다. 예를 들어 특정한 종교의 교리를 전혀 모르는 사람은 해당 종교의 종교화를 봐도 의미를 파악할 수 없다. 순수미술(작품)은 “사회적 존재이며” “의사소통”이기에 사회적 관습 등이 제약으로 작동할 수도 있지만 역으로 변화와 다양성의 가능성이 커질 수도 있다. 작품이 창작된 시대 이후에 재해석되거나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이다.5

그러고 보니 박정혁의 작품에 등장하는 녹아내리는 형상들은 단일한 의미의 무력함을 보여주는 듯하다. 작가는 꽤 명확한 서사와 메시지를 전하는 소재들을 그리지만 그것을 뒤섞고 해체함으로써 때로는 의미 파악이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고 다양한 맥락들을 구성한다. 이는 미술이라는 예술 장르가 가진 본질적 특성-역할 중 하나인 끝없는 의미 생성과 소통을 확인시키며, 그에 대한 가치 판단도 확정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피력한다.


〈Park's Land 2〉, 2022, 캔버스에 유화, 162.2 x 112.1 cm ©Artist


 

〈Park's Land 25〉, 2023, 캔버스에 유화, 116.8 x 91 cm ©Artist

물론 ‘Park’s Land’―를 비롯한 박정혁의 작품들―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제가 욕망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모두가 알고 있듯 인간은 욕망하는 존재이다. 육체적 욕망뿐 아니라 정신적, 심리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욕망도 있다. 욕망이 부정적인 것만도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삶을 유지하고 발전할 수 있도록 돕는다. 다만 욕망의 과잉은 불행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으므로 그것을 조절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Park’s Park’와 ‘Park’s Land’에 그려진 형상들은 분명 욕망의 과잉을 향한다. 특히 ‘Park’s Park’는 소비와 소유가 인간의 욕망을 채워주는 중요한 방편으로 인식되고 모든 것이―신앙과 신념까지도― 상품화되는 시대를 시각화한다. 작품 속 등장인물들은 자신이 무엇을 욕망하는지도 모른 채 쾌락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시대, 끝없이 소유함에도 끝없이 허기짐을 느끼는 현대인들, 그리고 처참하게 욕망의 대상이 되어 버린 존재들을 보여준다. 성적으로 대상화된 육체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벗은 몸은 금기를 전면에 내세워 인간의 이중성을 폭로하고 상업주의와 자본주의적 논리에 의해 인간 존재까지 소비되는 현실을 드러낸다. 성애적 인상이 강한 것은 성욕이 모든 욕망의 근저에 있으며, 성적이지 않은 욕망을 성욕이 승화된 것이자 리비도(Libido)가 대상을 바꾼 것으로 본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를 떠올리게도 한다.6
 
이후 사진보다 선명하게 느껴지는 사실적인 재현은 ‘Park’s Memory’에서 단순하고 두툼한 행위의 흔적으로 변하게 된다. PET 필름 위에서 일렁이는 이미지들은 회화가 환영이자 평면 위에 얹어진 물감임을 부각하는 동시에 오늘날 진행 중인 회화의 다양한 형식적 시도를 떠올리게 한다. 가변 프레임과 은색의 비닐은 현실 세계 속 물질성을 부각해 또 하나의 무한한 세계 혹은 그 자체로 독립성과 자율성을 가진 회화적 세계를 허물고, 회화인 동시에 설치로 존재하는 작품을 완성한다. 무엇보다 흔들리는 필름 위의 불분명한 형상과 거기에 겹치는 감상자의 모습은 욕망에 일렁이는 주체와 시대를 효과적으로 반영한다.

‘Park’s Park’가 사회에서 끝없이 소비되는 욕망, 그것의 폭주 같은 세속화와 정형화를 불편할 정도로 신랄하게 재현하고 재맥락화해 문제의식을 제기했다면 ‘Park’s Land’는 비판적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인간의 내면에 작용하는 욕망과 그것의 본질을 변신과 신화를 매개로 시각화하는 데에 집중했다. 특히 ‘Park’s Land’에서는 둘 이상의 육체-존재 사이의 경계가 흐트러져 녹아내린 듯 엉겨있는 형상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데 이는 여러 측면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가장 먼저 주체-존재들 사이의 육체적이거나 심리적 경계가 모호해지는 상황을 떠올릴 수 있다. 우선 음식을 먹는 행위, 사랑에 빠진 상황을 떠올릴 수 있겠다. 작가는 독단과 자만에 빠져 곡물의 여신 케레스(Ceres)의 숲에 침입해 여신에게 봉헌된 나무를 벤 죄로 허기를 이기지 못해 결국 자기의 몸을 먹었던 에뤼식톤(Erysichthon)을 그렸다. 안토니오 알레그리(Antonio Allegri)의 <제우스와 이오(Jupiter and Io>(1530경)를 변용한 〈Park’s Land 1〉(2022)도 빼놓을 수 없다.


《불온한 가능성》 전시 전경 ©리포에틱

무엇보다 ‘Park’s Land’에는 끝없이 쏟아지는 이미지 자극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키고자 하는 박정혁의 욕망과 새로운 작품을 보여주고자 하는 열망이 흘러넘친다. 현대는 이미지에 지배받는 시대이고 그 어느 때보다 변조와 왜곡이 심하다. 이미지는 끝없이 변신한다. 나중에는 원본이 무엇이었는지도 모르는 상황이 벌어지고, 원형은 녹아내리듯 사라진다. 원형과 복제본, 편집본의 경계는 해체된다. 작가는 이에 대해 긍정 혹은 부정이라는 명확한 판단을 유보한다. 이 상황 자체를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회피하거나 부정할 수 없는 현실임을 알기 때문이다. 대신 자신의 작업에서 이미지들을 인용하고 구축해 원본성을 불분명하게 한다.
 
작품 속 하늘도, 바다도 하나의 원본이 인용된 게 아니다. 여러 출처를 가진 형상은 작가의 행위로 조각조각 난 채 이어진다. 다양한 시대를 넘나드는 시각적 이미지의 활용은 통일성과 일관성을 적극적으로 깨뜨린다. 모든 것은 그저 지금 존재할 뿐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작가적 상상과 즉흥성이 더해진다.
 
『변신 이야기』가 섬세하게 구체적인 세부를 설득력 있게 묘사하고 있음에도 세부들이 하나의 일관된 형상을 이루지 못하듯7 “작품의 완성에 다가갈수록 인용한 이미지들은 예상하지 못한 형상으로 변신하고 작가의 머릿속에서 생산되는 이미지의 비중이 커졌다. 결과적으로 불규칙한 모자이크, 조각 수를 셀 수 없는 퍼즐 같은 회화는 원본의 힌트를 지우면서도 남겨두어 형태와 의미의 열림과 닫힘, 재현에서 표현, 평면 위의 색면과 추상까지 아우르는 모두를 소유한―소유하고자 하는― 이미지의 종합이 되었다.”8

결과적으로 박정혁의 작품은 이미지를 제공받고, 보고, 생산하는 과정을 성실하게 거치지만 원본성을 알아볼 수 없는 혼종적 결과물이자 가장 명확한 원본인 작품을 완성한다는 매력적인 자기모순을 실현한다. 회화적 행위의 편견을 벗어나기 위해 손 그 자체나 붓이 아닌 도구를 사용하는 그리기를 선택해 회화를 “구축”하지만,9 그로 인해 박정혁의 그림-이미지라는 오라(aura)와 유일성이 강화되는 것이다. 그렇게 정체성은 해체되고 확고해지기를 반복한다.


〈근기억 드로잉 20240623〉, 2024, 사진 콜라주 위에 혼합재료, 21 x 21 cm ©Artist

이러한 태도는 기억을 전면에 내세운 작품에도 적용된다. 기억은 개인의 정체성 형성에서 큰 부분을 차지한다. 기억은 주체의 삶 그 자체와 같다. 작가는 시각적 생산자이자 일상을 살아가는 한 명의 주체로서 많은 정보들을 경험한다. 그리고 그중의 일부는 기억으로 축적되어 이후의 행위에 영향을 끼친다. 다만 기억은 머릿속에 남는 순간부터 끝없이 지워지고 재생산된다. 그것은 객관성을 확보한 명명백백한 기록이 아니며 기억의 주체에 의해 끝없이 변형된다.
 
얼굴 이미지가 등장하는 파편화된 이미지의 부분들이 클로즈업된, 사진과 그림이 뒤섞인 '근기억 드로잉'(2017~)은 이러한 기억의 특별한 성격을 시각화한다. 기억만 혼재되는 것은 아니다. 기억하기를 통해 시간까지 뒤섞인다. 흘러간 시간은 기억되어 정지되었다가 다시 살아나기를 반복한다. 또한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미래에도 기억은 계속 작동할 것이기에 기억의 여신 므네모시네(Mnemosyne)가 과거에 있었고, 지금 있고, 앞으로 있을 모든 것을 알고 있듯이 기억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포함한다.10
 
한편 박정혁의 작품 속 혼종체는 자신이 처한 맥락에서 끝없이 과거의 자신으로부터 탈피하며 새로운 정체성을 구축-해체해 나가는 과정 중의 주체를 상징하는 것으로 읽을 수 있다. 전술했듯 세계 속 모든 존재는 끝없이 반응하고 변신에 가깝게 변화한다. 애초에 단일한 주체-정체성은 불가능하다. 그 과정은 처절하고 고통스럽기도 하며, 혼돈을 거치기도 한다. 그리고 이 혼종체는 일정 부분에서 ‘되기(becoming)’를 상상하게 이끈다.
 
그런데 결핍된 것 혹은 소유했는데 상실한 것을 원할 때 욕망이 발생한다는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질 들뢰즈(Gilles Deleuze)와 펠릭스 과타리(Félix Guattari)는 욕망을 물질과 몸(신체)에 기반한 원초적인 힘이며 자유롭고 생산적인 에너지이자 “현실계를 생산”하는, “현실 속의, 그리고 현실의 생산자”라 말한다. “욕망이란 ‘하고자 함’”이다.” 살고자 하고, 말하고, 사유하고, 창작하고자 함이다. 그리고 욕망은 “무엇이 되고자 하는지”, “어느 방향으로 ‘되기’를 이룰 것인지 결정한다.11

그런데 ‘되기’는 존재 혹은 소유가 아니다. 그것은 지정도 고정도 아닌 “어떤 것에서 다른 것 사이로 변하는 중간지대를 의미한다.” 다양체이자 기원과는 상관없는 “무한한 횡적 팽창”이다. 끝없이 분화하며 다른 존재-되기를 시각화한 것 같은, 나 자신의 존재성을 탐구하는 박정혁의 작품은 종국에 세계와 함께 생성되는 지각 불가능한 것-되기로 나가려 한다. 이는 “은유나 동일화도 아니며” 모방이나 동일화도 아닌, 식별할 수 없는 구역에 들어가는 것이다.12 결국 ‘되기’는 “실체적 의미가 아니라 동사적 의미로 이해되어야 하는”, “모든 대상 혹은 존재를 성격 규정하는 잠재적인 점들로 이루어지는 계열들이 순간적으로 만난 변신을 낳는 하나의 과정”이다.13


〈Park's Land 23-1〉, 2024, 캔버스에 유화, 193.9 x 130.3 cm ©Artist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정혁이 향하는 욕망은 동일성의 체계, 권력의 시선을 완벽히 벗어나지 않는다-못 한다. 미술의 흐름에 자신의 위상을 확고히 하고자 하는 작가적 욕망의 발현은 중심성을 붙잡은 채 배회한다. 작가의 내부에 축적되는 영감의 원천들, 논리적 추론과 감정의 발동으로 일어나는 계획적이거나 즉흥적인 창작의 과정, 색과 형태 그리고 공간의 구성, 고정관념의 해체와 보편적 공감을 동시에 불러올 수 있는 실험들, 즉 그 내부와 외부에서 미술 작품을 구성하는 요소들에 관한 근원적인 탐구는 박정혁의 작업에서 매우 중요하다. 이것은 그동안 미술이 속해온 구조를 벗어나려는 것이자 그 안에 들어가는 것이기도 하다.
 
사실 작가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작품은 어떤 방식으로든 구조 안에 들어간다. 자기모순은 필연적이다. 박정혁은 분명 미술의 역사와 전통을 학습하고 비판적 질문을 던진다.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사유와 미감에 반응하며 고정됨이 아닌 유동함을 향한다. 그러나, 동시에 “자신의 작업이 미술사에서, 회화사에서 어떤 위치에 놓이는지-놓일 수 있는지, 자기 작품의 미술사적 지형도는 무엇인지” 끝없이 질문한다.14 어쩌면 작가로서 당연히 원하고 고민하는 일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관점에서 보면, 전술했던 ‘Park’s Land’의 혼종체는 경계를 넘나드는 저항적 해체을 위한 끝없는 변신-생성이 아니라 단일성과 다양성, 이쪽과 저쪽을 모두 오가거나 둘 다가 아닌 상황을 그린 것이며, 그래서 자기 분열적인 분위기가 풍기게 된다.

불현듯이 『변신 이야기』의 「맺는 말」이 떠오른다. “하지만 나는, 나의 더 나은 부분은 영속하는 존재로서 / 저 높은 별들 위로 실려갈 것이고, 내 이름은 소멸하지 않을 것이다.”15 물론 “새로운 몸으로 변신한 형상들을 노래하라고 내 마음 나를 재촉하니,”16 창작의 행위는 지속될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그저 진행-변신 중의 상태를 지켜보려 한다.

1) 이탈로 칼비노, 「오비디우스와 우주의 인접성」, 『왜 고전을 읽는가』, 이소연(역), ㈜민음사, 2021, p. 53.
2) 김기영, 「오비디우스 『변신이야기』의 에필로그(15.871~9)에 나타난 오비디우스 변신의 의미」, 『외국문학연구』, 제51호, 2013, p. 56.
3) 박정혁, 「작가 노트」, 2023.
4)현정선, 「뮈토스와 로고스, 신화와 이성」, 『독어독문학』, 제173집, 2025, p. 206. ; 오세정, 「폭력과 문화, 희생양의 신화」, 『인문학연구』, 제15집, 2011, p. 74.
5) 하워드 리사티, 『공예란 무엇인가』, 허보윤(역), 미진사, 2013, pp. 152-153, pp. 155-156, pp. 160-161.
6) 이진경, 『노마디즘 1』, ㈜휴머니스트 출판그룹, 2016, p. 127.
7) 이탈로 칼비노, 2021, p. 45.
8) 이문정, 「변신, 근원 찾기와 해체의 과정」, 『퍼블릭아트』, No. 223, 2025년 4월, p. 132.
9) 이문정과 박정혁, 작가 인터뷰, 2025년 2월 17일.
10) 장영란, 「기억과 상기의 신화와 철학」, 『철학과 현상학 연구』, 제45집, 2010, pp. 144-145.
11) 질 들뢰즈, 펠릭스 과타리, 『안티 오이디푸스: 자본주의와 분열증』, 김재인(역), ㈜민음사, 2024, pp. 60-61. ; 남정애, 「들뢰즈/가타리의 사유를 토대로 살펴본 변신모티프」, 『카프카연구』, 제30집, 2013, pp. 61-62. ; 이진경, 2016, p. 129.
12) 김진옥, 「들뢰즈와 가따리의 되기(becoming)와 버지니아 울프의 「파도」」, 『현상과인식』, 통권 제128호, 2016, pp. 126-127, p. 130.
13) 아르노 빌라니, 로베르 싸소(책임 편집), 『들뢰즈 개념어 사전』, 신지영(역), 도서출판 갈무리, 2013, p. 107.
14) 박정혁, 필답, 2025년 2월 25일.
15) 오비디우스. 『변신 이야기』, 천병희(역), 도서출판 숲, 2023, p. 691.
16) 오비디우스. 2023, p. 24.

References

Writings